[매일경제] [세상사는 이야기] 동해 병기(竝記)를 응원함
- 작성일2020/07/25 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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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동해 병기(竝記)를 응원함
동해라는 바다이름은
역사와 생활 속에 익숙하고
지리학계 표기 원칙에 맞는다
일본해 표기에 맞서
한국해 쓰면 안 되는 이유다
입력 : 2020.07.25 00:04:02 수정 :2020.07.27 13:53:10
2019년 4월 말 뉴욕에서 한일 대표들이 치열한 설전을 벌였다. 유엔 지명 전문가그룹 회의에서다. 국제수로기구(IHO) S-23 수정판에 일본해(Sea of Japan) 표기를 동해(East Sea)와 병기해 달라는 우리의 요구에 일본이 맞선 자리였다. IHO는 2017년 4월 총회에서 한국 측 요구에 대해 한국, 일본, 북한 3국 주도에 미국과 영국을 옵서버로 더해 비공식으로 협의하도록 정리했다. 시한을 2020년 총회 때까지로 못 박았다. 예정대로라면 올 11월쯤 디지털 해도 논의와 함께 다시 겨뤄야 한다.
IHO에서 제작한 바다와 해양의 경계라는 이름의 지도이자 가이드북인 S-23에 일본해와 동해 병기 요구는 뜨거운 현안이다. 정부는 1992년 열린 유엔 지명표준화회의에 이를 처음 제기해 국제사회는 물론 한국 내에서도 알렸다. 민간에서는 동해연구회라는 연구단체가 1994년 출범해 활동을 펼쳤다. 이후 성과는 숫자로 잘 나타난다. 세계 각국 지도에 동해와 일본해 병기 비율은 2000년 2.8%에 그쳤으나 2005년 18%, 2009년 28%를 거쳐 2014년엔 40%를 넘는 것으로 추계된다.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해야 한다는 요구의 논리적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해당 지역민에게 익숙한 명칭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과 지명에 관한 국제기구나 지리학계의 원칙을 따르자는 것이다. 동해는 한반도 거주민에게는 오른쪽에 위치한 큰 바다로 역사와 생활 속에 존재한다. 2000년 이상 동해라는 이름에 익숙해져 있다. 1145년 쓰인 삼국사기에 동해라는 기록이 있다. 일본 사람들은 필요에 따라 다른 이름을 쓰기도 했지만 이 바다를 주로 일본해(니혼카이)로 부르고 표기했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 바다를 한쪽에선 잉글리시 채널, 다른 쪽에선 라 망슈로 부르는 것도 같은 현상이다.
문제는 IHO가 1929년 S-23을 처음 발간할 때 일본해로 명기해버린 일이다. 당시 우리는 주권을 잃어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처지였다. 1937년 2판 제작 때도 식민 지배가 이어져 있었다. 1953년 3판 때는 한국전쟁 중이었다. 1957년에야 IHO에 가입했고, 동해와 일본해 병기를 요구한 건 1992년이었다. 제국주의 지배에서 벗어난 뒤 주권국가로서 역사적으로 써 온 바다 이름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은 당연했지만 늦어도 한참 늦었다.
IHO나 유엔 지명표준화회의 등 국제기구는 특정 지명에 인접국 간 합의를 못하는 경우 당사국에서 각각 쓰는 이름을 병기하도록 권고한다. 한반도 동쪽 바다는 동해나 니혼카이라는 명칭을 쓰는 것이 맞는다. 다만 이를 영어 'East Sea'와 'Sea of Japan'으로 병기하자는 것이다. 미국의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1990년대부터 이미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하고 있다. 세계 최고 지도제작사 랜드 맥널리도 병기에 동참했다. 언론매체 중에는 CNN, 더 타임스, 르 피가로 등이 동해와 일본해를 같이 쓴다.
미국 국무부 산하 지명위원회(BGN)는 한 지형에 한 이름만을 인정하는 원칙을 고수한다. BGN의 이런 원칙을 깬 역사적인 사건이 미국 내에서 벌어졌다. 2014년 버지니아주 의회가 공립학교 교과서에 동해와 일본해 병기를 의무화하는 법을 제정하고 공립학교에서 실행된 일이다. 학생들에게 교육의 다양성을 부여하자는 주장을 인정받은 결과다. 한국이 일본을 이기려는 경쟁 차원이나 정치적 목적으로 비쳐졌다면 버지니아주 지방의원들을 설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국내에서도 일반인 대상 여론 조사에 동해와 일본해 병기보다는 일본해에 맞서는 한국해라는 이름을 내세워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접근은 국제기구나 지리학계에서 인정받기 어려워진다. 교육의 다양성을 강조한 버지니아주 사례나 해당 지역민들에게 익숙한 이름이기 때문에 써야 한다는 주장이 더 공감을 얻는다. 지명은 역사와 생활 속 산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