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기고] 동해 명칭 확산의 플랫폼, 유엔_주성재
- 작성일2021/06/14 01:56
- 조회 1,190
동해 명칭 확산의 플랫폼, 유엔
주성재 | 경희대 지리학과 교수 유엔지명전문가그룹 부의장
입력 : 2021.06.14 03:00 수정 : 2021.06.14 03:01
지난 5월 첫 주 유엔지명전문가그룹(UNGEGN) 총회가 화상으로 개최됐다. 각 회원국에서 적절한 원칙에 의해 정한 지명을 국제적으로 혼동 없이 사용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논의가 5일간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한국이 이름도 낯선 이 회의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은 매우 특수한 상황, 즉 동해 명칭을 국제적으로 확산하기 위한 동기에서 비롯됐다.
1992년, ‘동해’ 알리기에 나선 우리 정부가 직전 해 가입한 유엔을 주시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해 8월 열린 유엔지명표준화총회(UNCSGN, 2019년 UNGEGN과 통합)에서 정부 대표는 대한민국 동쪽에 ‘동해’라는 바다가 있는데, 총회의 권고에 따라 당사국 간 합의로 명칭을 결정할 것을 요청했다. 당연하게 여겨졌던 ‘일본해’ 단독 표기 현상(status quo)을 깨려는 시도를 유엔에서 시작한 것이다. 유엔지명회의는 지명을 정하고 관리하는 원칙을 논의하고, 개별 명칭은 다루지 않는다. 하지만 정치적 속성을 갖는 지명의 본질로 인해 국가 간 지명 분쟁을 피할 수 없었다.
동해는 표면적으로 드러난 이슈 중 하나였지만, 한국은 원칙을 인용하는 데 주력했다. 공유하는 지형물에 대해 각국의 이름을 모두 존중해야 한다는 이 총회의 1977년 결의가 핵심이었다. 동해 명칭을 사례로 지명의 위상과 용어에 관한 이스라엘과 오스트리아 지명학자의 보고서를 이끌어낸 것도 같은 맥락의 성과였다.
한국은 지명 관리 기술 영역에 대한 기여를 지속적으로 확대했다. 이기석 서울대 명예교수는 2000년부터 이 조직의 업무를 협의하고 결정하는 평가실행 실무그룹의 의장을 맡아 집행부를 수차례 한국으로 초청했다. 국토지리정보원은 총회 결의문 검색엔진을 구축해 현재 5개 언어로 제공하고 있다. 기술 부문 참여는 전문가 네트워킹으로 이어졌다. 각국 지명 전문가와의 교류는 그들의 모범 사례로부터 배우고 우리의 성과와 과제를 전달하는 통로로 기능했다. 이들은 동해연구회가 매년 주최하는 국제세미나에도 초청되어 동해 문제를 풀기 위한 논의에 참여했고, 자국 지도 제작자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주체로 활동했다.
동해 표기 논의는 2014년을 기점으로 일본이 먼저 문제를 제기하는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다. 바다 이름 세미나에 대한 보고서와 단일 주권 초월 지형물의 지명 문제에 대한 한국 기술문서에 ‘일본해’가 유일한 국제 명칭이라는 판에 박힌 주장을 펴는 방식이다. 한국은 이에 대한 반론 형식으로 ‘동해’의 정당성과 해결책으로서 병기의 타당성을 전달한다.
이번 총회에서 유엔지명전문가그룹은 중장기 활동 방향을 공유하는 전략계획을 채택했다. 키워드는 2015년 이래 유엔이 추구하는 지속가능발전목표(SDG)를 지원하는 지명 관리, 평등과 포용을 지향하는 지명 사용, 문화유산으로서 지명의 가치 보호, 소수 언어집단의 지명 보호 등이었다. 희망적인 것은 이 방향이 동해 표기 진전의 방향과 맥락을 같이한다는 것이다. 동해를 함께 쓰는 것 또한 지명 사용의 권리를 보호함으로써 평등과 포용이라는 인류 보편가치에 부합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유엔지명전문가그룹에 참여하는 것은 바로 동해 명칭을 확산하는 일로 연결된다. 유엔은 여전히 중요한 동해 명칭 확산의 플랫폼이다.